투쟁 VS 투쟁
한나라당이 결국 특유의 장기인 '날치기 기술'을 이용해 주요 법안들을 통과시켰네요.
통과된 법안 중에는 아예 상임위 심의조차 되지 않은 것도 있다죠?
정부와 여당이 국민의 의사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부치고 있는 법안이 대부분이라니,
그들의 의도를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뭐, 한나라당의 정체성으로 봐서 그런 몰염치한 짓을 한다는 건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만,
그와는 별도로 이번에도 '역시 ...' 하는 자괴감에 빠지게 하는 건,
민주당을 핵심으로 하는 야당의 무기력함에 있습니다.
문을 깨부수고,창문을 깨뜨리고, 멱살에 주먹까지 날라다니는
화려한(?) 장면들을 연출하기는 했습니다만, 역시 역부족..... 이라고 말하며
그냥 넘기기에는 왠지 꺼림칙함이 느껴집니다.
야당 의원들이 진정 목숨이라도 거는 자세로 투쟁을 하긴 한 걸까? 하는 의문 때문이죠.
'온 몸을 던져 막아내겠다.'는 것은 곧 목숨을 건 투쟁과 같습니다.
그렇게 말한 그들이, 그렇게 무기력하게 당하고도 의원직 사퇴 같은 얘기는
한 마디도 안나오기에 하는 말입니다.
도대체 무엇을 던졌다는 것인지.....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 쌍용차 투쟁 등 노동자들의 투쟁을 보면
그곳에는 진정 목숨을 건 싸움이 있습니다.
자신과 가족의 생계가 걸린, 그야말로 막다른 골목에 처한 심정을 생각하면 이해가 됩니다.
당장 먹고살 수단이 없어지는 절박한 판국에 어영부영할 소지가 없는 거죠.
그러다보니 분신사태로까지 치닫는 극한상황이 연출되기도 합니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조차 참으로 답답하고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울분이 솟아오르곤 합니다.
그에 반해, 야당 국회의원들의 투쟁에는 늘 한계가 존재합니다.
욕설과 고함에 육박전까지 치르며 치열하게 투쟁하는 듯하지만,
일단 의사봉이 땅땅땅 두드려지고 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우린 할만큼 했다, 모든 책임은 여당에 있다, 라고 선포하는 것으로 투쟁의 막은 내려집니다.
투쟁에서 진다고 해서 의원들의 월급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요,
노동자들처럼 투쟁하는 동안 아무 대책 없이 손가락 빨아야할 일도 없습니다.
멱살잡이하는 동안에도 세비는 꼬박꼬박 계산되어 나오니 말이죠.
그렇다고 해서, 국민을 위한 투쟁에서 패했으니 과감히 의원직을 사퇴하겠다는 용기도 보이질 않습니다.
그냥 투쟁을 했을 뿐, 자신의 이익에는 거의 아무런 영향이 없습니다.
그러니 투쟁은 투쟁이되 목숨걸 일 또한 없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겠죠.
오늘자 기사를 보니, 이명박 대통령이 '발리포럼'에 참석해서는
'대한민국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존중하고 세계평화를 위해 노력한다.'고 역설했다고 합니다.
굳이 그렇게 강조하고자 애쓰는 것은 우리의 실상이 정반대로 흘러간다는 반증이기도 하겠죠.
대통령 입장에서는 어떡하든 한국의 국격과 이미지를 높이려는 고단한 노력을 경주해야 하니까요.
그 고단한 애씀에 박수라도 좀 보내줄까요?
지금 이 지경의 대한민국에서, 심의조차 안된 법안들이, 그것도 국민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이,
날치기로 통과되는 현장을 목도하면서
그깟 의원직에 연연할 이유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요?
그래도 원내에서 싸우는 것도 필요한 일이라구요? 참 장하시네요...
우리 사회에 좀 더 멋지고 쿨한 국회의원 좀 있어주면 안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