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사회학

한 마디 말의 절대무공

젊은바다 2009. 9. 21. 11:07

정치사찰이 광범위하게 자행되고 있다는 박원순 이사와 여러 사회단체 관계자들의 증언에 대해 안기부와 기무사의 답변은 지극히 간단합니다. '정치사찰 한 적 없다.' 그 한 마디로 인해 박원순을 비롯한 수많은 사회단체 관계자들은 졸지에 그리고 일거에 거짓말장이로 전락합니다.

 

이는 마치 무협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합니다. 수많은 적들이 사방에서 한꺼번에 주인공을 향해 달려듭니다. 주인공이 거의 압사하겠구나 싶은 순간, 커다란 장풍(폭풍)이 중심부로부터 뿜어져 나오면서 주인공을 둘러싼 수많은 적들이 일거에 쓰러집니다. 단 한 방으로 무수히 많은 적들을 일거에 쓰러뜨리는 가공할 무공, 우리의 안기부와 기무사는 바로 그런 무공의 소유자들입니다. 그러니 이제 북한이나 외세의 침략 따위는 걱정할 필요가 없겠죠. 두 무사가 출동하여 일거에 적들을 격퇴할테니까요.

 

말 한 마디로 일거에 적들을 무력화시키는 무공은 아무래도 그들의 주군으로부터 전수받은 것 같습니다. 뛰어난 제자에게는 늘 훌륭한 스승이 있는 법이죠. 백성들의 촛불이 들불로 확대되었을 땐 '뒷산에 올라가 많은 반성을 했다.'라는 한 마디로 일갈하더니, 언론장악을 중단하라는 백성들의 성난 목소리에는 '언론장악 의도는 없다.'라는 한 마디로 간단히 제압해버립니다. 상황 끝.

 

이는 마치 그 주군이 믿는다는 종교의 논리와 유사한 것 같습니다. '의심하지 말고 믿어라.'는 것이죠. 논리적으로 맞지 않거나 불합리한 것일지라도 일단 무조건 믿으라고 합니다. 믿으면 비논리적이고 불합리한 것들도 모두 진리가 된다는 논리입니다. 이 얼마나 간단하고 쉬운 진리란 말인지요! 이렇게 간단한 진리를 눈앞에 두고 우와좌왕하며 의심만 품은 우리는 모두 죄인일 뿐입니다.

 

강력한 신권을 겸비한 주군과 그를 모시는 절대무공의 신하들, 그들이 통치하는 대한민국의 백성들은 마땅히 행복해야만 합니다. 믿는 자는 행복할 것이요, 불신하는 자는 처벌받을 지어다. 아멘!

 

'믿슙니까?' 묻긴 왜 묻나요? 그냥 명하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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