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에 점령당한 도시 한복판, 밤에 여자 혼자 다니기 겁난다"
7월 21일자 조선일보 기사 제목입니다. 조선일보의 독특하고 왜곡된 기사제목 뽑기야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만, 한번 짚고 가야 겠네요. 우선 '점령'의 문제부터. 노숙자들이 과연 무엇을 강압으로 점령할만큼 힘있는 존재일까요? 어디를 허락 없이 강압으로 점령할만한 힘이 그들에게 있긴 있는 걸까요? 잘 모르긴 해도, 그들은 오히려 힘이 없어 거리로 내몰린 사람이라고 봐야 합니다. 완력을 휘두를 재주라도 가졌거나 독한 마음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뒷골목 깡패같은 집단에라도 들어가겠죠. 그럴만큼 강하거나 독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냥 힘없이 거리로 내몰리는 처지로 보는 게 맞지 않겠어요? 그렇게 돈없고 힘없는 사람들이 도시 한복판을 점령했다고 표현하는 것은 과장을 넘어 왜곡입니다.
다음으로 '밤에 여자 혼자 다니기 겁난다'는 문제. 노숙인들이 잠자는 곳을 잠깐 지나가는 사람이 겁난다면, 한밤중에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 길거리에서 잠을 청해야 하는 노숙인들은 대체 얼마나 겁이 날까요? 잠깐 지나치는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그 노력(?)의 10%만이라도 기울여 노숙자들의 마음을 헤아려본다면 저 따위 기사제목은 뽑을 수 없을 것입니다. 집도 절도 없이 거리에서 잠을 자야하는 노숙인들을 사람 취급이나 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잠깐 지나가는 사람을 걱정해줄 것이 아니라, 대책없이 거리로 나앉은 사람을 걱정해주는 게 인간적 도리죠. 힘없는 사람을 시민으로 보지 않는 언론은 찌라시를 넘어 쓰레기에 가깝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예상되는 기사 하나. 만약 어떤 여자가 밤에 혼자 다니다가 성추행을 당한 경우 예상되는 조선일보 기사는 아마도 "밤늦게 여자 혼자 다니는 것은 성범죄를 유발할 수 있다" 따위가 될 것으로 봅니다. 성추행 사건을 대하는 조선의 태도는 대개 그렇거든요. 복장이 야해서 그렇다는 둥, 밤늦게 여자 혼자 다니면 안된다는 둥 하는 같잖은 논리를 내세우면서 말입니다. 그런 신문이 밤에 혼자 다니는 여자를 걱정해주는 것처럼 말하는 것도 좀 웃기는 상황입니다.
정작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문제는 이런 거라고 봅니다. 조선일보같이 정론을 포기하고 왜곡된 기사를 남발하는 신문이 대한민국에서 일등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죠. 그런 힘으로 국민 대다수의 여론을 왜곡하고 더 나아가 시민들의 의식까지 비틀어지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거야 말로 정말 심각하고 공포스러운 현실이라고 해야 합니다. 정의와 인권이 일등 언론으로부터 난도질을 당하는 세상, 그런 사회만큼 끔찍한 곳이 또 있을까요?(북한같은 비민주국가는 일단 제외하자고요. 조선이 북한 언론보다 낫다고 말하면 그건 더 웃기잖아요?)
조선에 점령당한 대한민국에서 국민들이 별 생각 없이 거리를 활보한다는 것이야말로 정말 우리가 겁내야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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