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사회학

공공연한 비밀과 진실, 그리고 정직

젊은바다 2009. 3. 28. 16:41

공식적인 통로를 거쳐 진실로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진실로 인지하고 있는 것을 일컬어 우리는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말합니다. 현재 사회적 이슈 한가운데 있는 장자연 사건이나 박연차 사건도 통상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미 공공연한 비밀로 알고 있는 것인데, 어떤 사건을 계기로 수면 위로 떠올라 공식적인 통로를 거쳐 진실로 인정되는 과정에 있는 것이죠. 공공연한 비밀과 진실에 차이가 있다면, 그건 다만 '어느 정도까지인가' 하는 범위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이렇게 공공연한 비밀로 이미 인지하고 있던 것이 진실로 드러났을 때, 흔히 언론에서 얘기하듯이 사람들에게 '공황' 또는 '충격'으로 다가올까요? 언론에서는 마치 새로운 사실이 폭로되었고 이로 인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일어난다며 호들갑을 떨어댑니다만, 정작 주위 사람들 반응을 보면 전혀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그저 익히 알고 있는 사건이 터졌다는 것이고, 재수 없는 사람(또는 찍힌 사람)이 걸려들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사회적 이슈가 되는 것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언론에서 공식적이고 대대적으로 언급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할 것입니다.

 

비밀이든 아니든 어떤 사실이 존재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라면, 평소에 그것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사회 구성원 전체가 해야할 책무일 것입니다. 공식적인 과정을 거쳐 진실로 판명되지 않았다고 해서 공공연한 비밀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허깨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그냥 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것은, 태풍이 눈 앞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태풍이 없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저 손으로 눈을 가린 채 '영구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회도 우리의 몸과 같아서 당장 눈 앞에 보이지는 않더라도 속병이 들면 서서히 곪아갑니다. 조기에 그 병을 인지하고 하루라도 속히 치료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병은 점차 커지게 되죠. 병이 있는줄 알면서도 마치 없는 것처럼 태연자약 하다가는 나중에 더 큰 비용을 치루게 됩니다. 곪아 터져서 몸 밖으로 나타날 때까지는 없는 것으로 치부하다가 정작 병이 눈 앞에 나타나서야 호들갑을 떠는 것은 어리석음 외에 아무 것도 아닙니다. 어리석음이 아니라면 모종의 음모 내지는 전략이 될 수도 있겠지요. 여론몰이를 이용하려는 어떤 주체에 의해서 말입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정직'은 대개 밖을 향하는 것 같습니다. 남들에게 거짓말 하지 마라, 다른 사람들에게 정직하라, 등의 방식으로 표현되는 것이죠. 그것이 밖을 향할 때에는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날 때에야 비로소 정직하다 또는 아니다를 판별하게 되는데, 그 전에는 실제로 그것이 정직인지 아닌지를 알지 못합니다. 이미 존재하는 것이 나중에 일어나는 사건에 따라서 정직과 부정직으로 판별되는 것, 그것이 바로 밖을 향하는 정직의 본 모습입니다. 그런 것에 과연 '정직'이란 말을 붙일 수나 있는 걸까요?

 

정직은 밖을 향하기보다는 안을 향할 때 비로소 제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남을 향하는 게 아니라, 바로 자신을 향하는 것이죠. 정직한지 아닌지는 남들이 아는 것이 아니라, 어떤 행위를 하는 순간 자기 자신이 이미 인지하게 됩니다. 시간에 따라 정직에서 거짓으로(또는 그 반대로) 변하는 게 아니라, 정직이든 거짓이든 처음부터 정해지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안으로 향하는 정직의 제 모습이고, 정직이라는 말은 모름지기 자기 내부를 향할 때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공연한 비밀이 사실로 드러나야 비로소 이를 이슈화 하고, 진실과 치료 운운하며 호들갑을 떠는 것은 사람들을 호도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슈로 남아 있는 동안에만 유효한 조치이기도 합니다. 사회라는 조직에 생긴 병을 그저 일시적으로 땜질하는 행위일 뿐입니다. 거짓을 알면서도 실제 거짓으로 판명되기 전까지는 애써 정직이라 치부하며 눈 감고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다가 또 다시 유사한 사건이 터지면 동일한 호들갑이 반복되는 것이죠.

 

겉으로 나타나는 모습에만 주로 가치를 두는 사회의식의 병폐 때문일까요? 내부로 향하는 정직은 찾아보기 어렵고, 그저 외부로 비쳐지는 허상의 정직만을 쫓아다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이 땅에 정직이란 나무가 건강하게 자라도록 하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