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사는 가족은 그 구성원들이 가족애로 뭉치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한 명이 곤란에 빠지면 나머지가 그를 돕고, 전체적으로 힘들 때에도 서로를 위로하고 의지하며 용기를 주죠. 회사와 같이 함께 일하는 조직에서도 이와 비슷합니다. 구성원간 경쟁하는 부분도 있고 간혹 알력이 생기는 경우도 있지만, 소통하며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위로가 됩니다. 그게 평상시의 모습이죠.
폭력집단은 회사와 가족을 버무려놓은 것 같은 조직이라 할 수 있겠는데, 대외적인 싸움을 할 경우 나름 똘똘 뭉쳐 서로에게 힘이 되기도 합니다만, 평상시엔 별로 그렇지 못하죠. 소위 군기잡는 문제로 인해 조직원 상하간 폭력이 동원되는 게 비일비재합니다. 뉴스에 나오는 걸 보니 조직의 소위 '형님'이 '아이들'에게 휘두르는 폭력이 정말 장난이 아니더군요. 부하가 상사에게 반항한다는 것은 꿈도 못꿀 일인 듯합니다. 잘못하면 말 그대로 병신이 될 수도 있을테니까요.
깡패들은 이렇게 자기 '식구'에게 폭력을 휘두르면서도 양심의 가책 따윈 전혀 느끼지 않습니다. 가족이지만 '쫄따구'는 맞아야 말을 듣는다는 의식이 팽배하죠. 조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그저 가차없는 폭력처벌만이 조직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수단이라 여깁니다. 그들에게서 인간에 대한 존중이나 배려 따위를 기대하기는 참으로 불가능해 보입니다.
우리 사회에 또 하나의 폭력문화 조직이 있죠. 아무 일 없는 평상시에도 소위 군기잡는데 필요하다며 폭언과 폭력이 난무하는 곳, 바로 대한민국 군대 말입니다. 오랫동안 함께 자고, 먹고, 훈련하면서 동지애나 가족애로 똘똘 뭉칠 것만 같은 조직이라 하겠는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깡패들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상하간 군기가 여간 센게 아니죠. 단 1개월의 차이로도 양자간 입장은 엄청난 차이를 보입니다. 선임은 거리낌 없이 폭력을 휘두르고 후임은 반항 한번 제대로 못하고 당하기만 합니다. 조금이라도 반항하는 기색을 보였다간 더 큰 낭패를 당하죠. 10대 '일진'들이 한 명에게 무지막지한 폭력을 휘두른 것처럼 말입니다.
상하간 위계질서가 비교적 엄격한 곳이라 할지라도 함께 일하고 생활하는 조직이라면 그 구성원간 도움과 배려가 조직을 이끌어가는 기본적인 동력이 됩니다.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와 배려라는 게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조직애나 의리를 유난히 강조하는 깡패집단에서는 자기 식구들에게도 폭력을 휘두릅니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도 없다는 얘기죠. 그들에게 인간은 그저 수단이고 때로 대상일 뿐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양아치'라고 부르는 이유죠.
군대 역시 양아치 문화에서 그리 멀리 있지 않습니다. 제복을 입고 규율에 따라 움직이며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듯하지만, 그건 겉치장일 뿐이고 속은 식구들간에도 믿지 못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상황이죠. 군기와 위계질서로 조직력을 다잡아보려 하지만 겉으로만 강할 뿐, 조직력의 속살은 물러 터지는 현실이라 하겠습니다.
속으로까지 알찬 조직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있어야 하고 구성원간 애정이 교감되어야 하는데, 우리 군대에서 그것이 가능할 것 같지가 않습니다. 그렇게 되려면 인격이나 인문에 대한 관심과 공부가 필요한데, 군대에서는 그걸 필요없는 것으로 치부하니까요. 인문적 교양에 좋은 서적을 소위 '불온서적'으로 낙인찍는 마당이니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이렇듯 인간에 대한 배려 없이 폭력만 가르치다 보니 군대에선 얻을 게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니죠.
군대에 대한 혁신 주문이 많이 나오는데, 조직이나 체계 또는 규모 따위의 혁신도 중요하겠지만,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혁신은 군대문화에 대한 의식의 혁신이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국민을 위한 군대'나 '명예로운 조직' 따위는 먼 나라 얘기일 뿐입니다. 양아치 군대문화에서 벗어나는 일, 대한민국 군대가 취해야 할 첫 번째 혁신작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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